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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차 루트] 인터라켄바젤파리 리온역 → 노트르담 대성당 → 루브르 박물관 → 개선문 → 샹젤리제 거리

2012.9.14 (금요일)

루브르 박물관은 지하1층, 지상2층의 4개 층에 드농관(Denon), 쉴리관(Sully), 리슐리외(Richelieu)의 3개 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전시관을 제대로 둘러보려면 하루가 꼬박 걸릴 정도로 루브르 박물관은 방대한 크기를 자랑한다. 요금은 모든 전시관을 둘러보는 정액 요금이 11유로. 그리고 안내 데스크에서 박물관의 지도가 그려져 있는 한국어로 된 관람 안내서를 반드시 챙겨가는 것이 좋다. 전시물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서점에서 루브르 박물관 가이드 북(한국어판)을 구입했다. 책 가격은 17유로.

(참고)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3DS를 대여해주고 거기에 한국어로 된 가이드가 제공된다고 하는데, 직접 대여해보지는 않았다.

 

수많은 전시품들이 있었지만, 내가 구경한 것들 중 몇가지 주요 전시품에 대해 적어본다.

드농관 2층, 드농관에서 쉴리관으로 넘어가는 중간에 <사모트라케의 니케상>이 위치해 있다.

도도한 실루엣으로 나폴레옹 3세 하에 헥토르 르퓌엘(Hector Lefuel)에 의해 설치된 웅장한 계단을 내려다보는 선수상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은 말로에게서 영감을 받은 말처럼 '시간과 우연의 걸작품'이다. 머리와 두 팔이 없으며 오른쪽 날개 일부가 잘려졌다가 잘못된 위치에 석고로 다시 만들어진 이 조각품은 그래도 그 서정적인 특색을 잃지 않았다. 아름다운 대각선으로 뻗은 몸이 물보라로 장식된 주름무늬의 니케(그리스어로 '승리의 여신'을 의미)는 곶의 높은 곳에서 태풍의 바람에 저항하는 것처럼 보인다. 원래 기능이 무엇이든 간에 (배의 승리를 기념하는 봉헌물, 게다가 또 난파를 피하기 위해 선원들이 내세운 조상) 그녀의 뛰어난 명성은 부당하게 얻어진 것이 아니다. (루브르 박물관 가이드북, p.117)

 

드농관 2층, 이탈리아 회화관에서 <모나리자>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해 있을 때 잠깐 그 뒤를 살펴보자. 엄청난 크기의 그림, 그 유명한 베로네즈의 <카나에서의 결혼식>이 걸려있으니 말이다.

폭이 거의 10미터에 가깝고 130여명을 등장인물로 하는 이 웅장한 구성을 시도한 베로네즈(Veronese)는 이 그림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왕자들인 샤를르 퀸트, 프랑소와 1세, 솔리만을 등장시키고 전경에는 티티안, 틴토레토, 바사노 등 베니스 회화의 거장들을 음악가들로 표현하였는데, 이중 흰 옷을 입은 이는 화가 자신을 표현한 것이다. 베로네즈는 "이런 종류의 거대한 작품을 구성할 때 화가는 시적 감성으로 원래 일화에 한정된 인물들만이 아닌 다른 인물들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바로 이러한 대단한 상상력으로 화가 베로네즈는 성서의 한 일화인 카나에서의 결혼식 주제를 다루게 되는데 그는 이 작품에서 중앙에 앉은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 외에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군중들을 표현했다. 또한 화가는 팔라디오(Palladio)에게 영감을 받은 거대한 건축적인 원근법을 사용하여 이 그림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16세기에 소개되었을 것 같은 난간이 달린 테라스로 향하는 양 측면의 계단을 가진 연극 무대로 변형시켰다. 산 조르지오 마조레(San Giorgio Maggiore) 베네딕트 회가 그들의 수도원 식당을 장식하기 위해 주문한 이 작품은 1798년 나폴레옹 군대에 의해 의해 프랑스에 들어오게 된 작품 중 하나이다. 최근에 빛 바랜 니스칠을 없애고 복구작업이 진행되어 작품 원색상의 풍부함이 다시 되살아날 수 있게 되었다. (루브르 박물관 가이드북, p.282~p.283)

 

드농관 2층,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있는 이곳에는 루브르 박물관의 핵심인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있다. 의외로 작은 사이즈이다. 옆에는 경관이 대기하고 있어서 만약의 사태를 항상 감시중인 것 같다.

레오나르도의 수많은 다른 그림에서도 재발견되는 이 유명한 미소는 피렌체의 부호 프란체스코 디 바르톨로메오 디 자놀리 델 지오콘도의 부인 리자 게라르디니(Lisa Gherardini)의 것으로 추정된다. 15세기에 처음으로 이런 가정이 발표되었으나 사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모델의 신원은 미지수로 남아있고 수많은 해석을 낳고 있다. 심지어 어떤이들은 화가 자신을 여성을 표현한 자화상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어쨌든 한가지 분명한 점은 이 초상화로 인해 여인의 이상형이 고정되었고 이 이상형은 이탈리아 회화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조르지오 바사리(Giorgio Vasari)가 다음 세대에 쓴 전기에 의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 그림을 그리는데 4년을 보냈을 것이며 이 그림을 완성작이라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화가는 이 그림을 프랑스로 가져갔는지도 모른다. 거장은 1519년에 프랑스에서 그의 삶을 마감했다. (루브르 박물관 가이드북, p.266)

 

혹시나 해서 자세히 봐도 역시 눈썹이 없다.

 

드농관 2층, 쉴리관으로 향하는 긴 복도에는 쟈크-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 1세 황제의 대관식>이 걸려있다. 역시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황제 대관식을 추모하기 위해서 황실 수석화가인 다비드에게 주문한 네 작품에서 단지 두 작품만이 제작되었다. 오늘날 베르사유에 있는 독수리기 수여식과, 폭이 거의 10미터나 되는 엄청난 크기의 나폴레옹 1세 황제의 대관식이 그것이다. 1804년 12월 2일 예식은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서 거행되었다. 그러나 다비드는 황제의 대관식을 재현하는 대신 나폴레옹이 조세핀에게 왕관을 씌워주고 교황 비오 7세가 축복을 내리고 있는 순간을 선택했다. 루벤스의 작품 마리 드 메디치의 대관식(루브르)에서 영감을 받은 다비드는 전체가 호화로운 집단 초상화 형태를 이루면서 인물들을 조화롭게 잘 배치하고 그들을 섬세하게 밝히며 긴 띠모양의 인물들을 만들어냈다. (루브르 박물관 가이드북, p.217)

 

Posted by DJ.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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